'여정'이라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인생의 순례길에서 우리는 어디론가 매일 매일 걸어가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상실감, 공허함, 비참함들 때문일 수도 있고,
무엇인가를 찾아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은 마음들도 듭니다. 마치 목 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날 때처럼 우리의 여정에서도 때로는 의심이 들고 불안함이
밀려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여정이 힘들다 느껴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2021년 2월 17일 )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을
떠나는 것보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집트를 떠나는 것이 더 어려웠다”합니다.
그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이집트는 떠나고 싶지 않은, 때로는 빵과 고기(위로와 위안)가 주어지는, 아프고 힘들었지만 적응하고 있었던 상처의 자리들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 자리를 떠날 수 있게 된 것은 그들 자신들의 노력과 능력, 확신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들을 품어 주셨기 때문에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그들을 데리러 오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재의 수요일,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는 말씀과 함께
머리에 재가 얹어 집니다. 그 재를 얹기 위해 머리를 숙이는 의미는 하느님께 돌아가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머리를 숙이고 자신을 낮추는 것은 예수님의 상처에 입맞추기 위해서 입니다.
성 금요일 십자가 경배를 하는 것과 같이 십자가를 경배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 십자가와 예수님의 상처는 보이는 십자가와 상처가 아닌 우리 삶의 가장 고통스러운 상처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 질병들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 혼자서는 그 병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혼자서 그것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돌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린 나병 환자를 본받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말씀(2021년 2월17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자의로, 타의로 소외되고 고립되어 있었지만 예수님 앞에 나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린 그 나병 환자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 비참해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는 것, 그것을 예수님께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치유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먼지이고 우리는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먼지가 된다는 것은 생명을 주시는 성령께서 하느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숨을
불어넣어 주신 것처럼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겠다는 그 약속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순절은 하느님께 돌아가는 여정이고, 다시 새로운 시작, 탄생의 시간입니다.
하느님께 향하는 여정, 치유의 여정입니다.
요엘 예언서의 말씀을 기억해 봅니다. “이제라도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분이시다” (요엘 2장 12-13)